대한제국 운명과 함께한 손탁호텔의 커피 이야기
☕ 1. ‘왕실의 영빈관’에서 시작된 커피 하우스
1902년, 고종 황제는 덕수궁 맞은편 정동 29번지의 1,184평 왕실 부지를 앙투아네트 손탁(Antoinette Sontag)에게 하사하고, 서양식 호텔을 짓게 했습니다. 2층 25개 객실의 이곳은 공식 명칭보다 ‘손탁호텔’로 더 잘 알려졌죠.
“독일인 손탁 여사는 궁내부가 국빈용으로 지은 영빈관의 운영을 맡아, 1층에 레스토랑과 커피숍을 개설했다.”
👩🍳 2. 앙투아네트 손탁, 제국의 바리스타가 되다
손탁 여사는 1885년 주한 러시아 공사 베베르(Beber)와 함께 입국해, 곧 궁중 양식조리사로 등용되었습니다. 고종과 명성황후의 신임을 동시에 얻은 그녀는, 국외 사절단과 왕실 인사들에게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선사하며 대한제국의 ‘살아 있는 외교 무기’ 역할을 했습니다.
🏛️ 3. 커피가 엮은 대한제국의 주요 무대
손탁호텔의 1층 커피숍은 단순한 다방을 넘어 외교와 정치의 거점이 되었습니다.
- 1905년 11월: 을사늑약 체결을 앞두고 이토 히로부미가 이곳에 머물며 일본의 침략 전략을 모의했습니다.
- 1910년 전후: 윈스턴 처칠(당시 신문기자)이 1박을 묵었으며, 미국인 스티븐스가 사망 전 마지막 밤을 보냈던 숙소이기도 합니다.
이토록 손탁호텔은 ‘커피잔 너머로 제국의 운명이 오가던’ 장소였습니다.
🌱 4. 대한제국 멸망 후에도 이어진 커피의 기억
일제강점기에 손탁호텔은 프랑스인 J. Boher에게 넘어가며 또 다른 전성기를 맞았습니다. 홍보용 엽서가 유행하며 커피·다과 문화는 더욱 대중화되었고, 20세기 중후반까지 ‘정동의 사교장’으로 남았습니다.
*“현존하는 손탁호텔 사진엽서는 보에르 시절 홍보용이 대부분이다.
지금은 건물은 남아 있지 않지만, 손탁호텔이 우리에게 남긴 ‘첫 커피전문공간’의 기록은 소중한 역사로 남아 있습니다.
✍️ 에필로그
한 잔의 커피가 지닌 의미는 맛과 향을 넘어 시대를 관통하는 외교·문화의 매개체였습니다.
손탁호텔의 커피가 그랬듯, 커피 한 잔이 누군가의 기분을 달래고, 누군가의 결정을 흔들며, 역사의 물줄기를 바꿀 수도 있었지요.
참고문헌
- 손탁호텔 설립과 황실 부지 하사
- 을사늑약 체결 전 이토 히로부미의 손탁호텔 거점
- 보에르 시절 사진엽서와 커피홍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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